글쓰기를 한다, 글을 쓴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텍스트는 매일매일 치고 있지만 글쓰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데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손으로 펜을 잡아 종이에 한 자 한 자 쓰는 것도 아니고 초당 속도로 키보드를 자갈 거리는 게 전부이면서 글쓰기에는 참 많은 시간이 걸린다. 멀티태스킹에 소질이 없고 유독 글을 쓸 땐 모니터에 푹 빠지게 돼 톡이 오든, 전화가 오든, 옆에서 말을 걸든 쓰기 이외의 것은 모두 OFF 상태로 두어야 한다. 긴 집중이 끝나면 멍-한 상태가 지속된다. 시간이 남아 글을 쓰는 나뿐만 아니라 그것이 직업인 사람에게도 글쓰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앞으로 틈틈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러한 수고의 부담스러움을 잘 알고 있어서일까. 흰 페이지를 새로 열기가 도무지 쉽지 않더라. 그래도 나는 글을 쓰는 일에 관심이 많다. 결국 블로그를 닫지 않고 다시 키보드 앞에 앉게 된 것은 이 때문이겠지.

글쓰기를 뒷전에 둔 사이 쓰기 대신 읽기에 몰입했다. 여러 책을 읽었다.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글과 책을 쓰고 싶다’라고 마음속에 크게 써서 붙여놨던… 이젠 거의 말라비틀어진 그 목표가 조금씩 꿈틀거렸다. 편하게 읽히는 매력, 누군가의 생각을 깊이, 오래 볼 수 있는 매력에 며칠째 ’에세이’를 읽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내 생각을 예쁜 글로, 누구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쓰고 싶어졌다. 내가 그들의 생각 하나에 고개를 끄덕였듯 누군가에게도 그런 순간을 주고 싶어졌다. 동기가 활활 불타올랐다. 이젠 정말 글을 써야겠더라. 출판사와 함께 쓸지, 독립출판을 할지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동기를 또 한 번 자극해줄 다른 카테고리의 책을 찾았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에 대한 대답이 담겨있다기에 그 책을 골랐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음… 또 다른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그간 가득 쌓아왔던 자신감이 실은, 오만으로 똘똘 뭉친 자만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수많은 글감 앞에서 뻔한 생각만 해오지 않았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라본 천장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파편처럼 흩어졌다. 다수의 책을 쓴 사람이지만 저자는 아직도 자신의 글이 서점에 꽂힌 것에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 부끄러움에 나도 동의했다. 역시 이 글들은 내 서재에만 꽂는 것이 좋겠지. 아직은. 하지만 이대로 글쓰기를 접어버린다면 이 책을 읽은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글을 읽었으니 조각난 반성문들을 파편으로만 두지 않기로 했다. 이 파편들을 모아 내 나름의 글을 쓰면 돼. 그래서 드디어, 이 흰 페이지를, 까만 활자로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라는 책의 제목대로 저자는 독자 하나를 키보드 앞에 앉히는데 성공했다.)



『같은 어휘가 반복되는 글을 쓰는 사람은 글쓰기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글쓰기에 관심 없는 사람이 쓴 것 같은' 글을 쓴 적은 없을까? 그건 싫은데. 난 글쓰기에 관심이 많단 말이다. 검색 잘 되는 블로그, 친구네 블로그에 쓰인 텍스트처럼 단순하고 생각의 흐름대로 나열된 글, 유행어와 줄임말이 난무하는 글보다는 그때의 심정, 나의 생각, 거기서 파생된 딴 생각을 잘 정리해 담아내고 싶다. 다음에 나 스스로도 낯선 누군가의 글을 보는 것처럼 새롭게 읽고 싶다. 천천히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씩 써 내려가면서 이 행위에 깊게 관심을 가져보자고 또 다짐 해본다.

그래서 1,808자의 이 글을 쓰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27분이다. 오래도 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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