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본 63빌딩과 국회의사당. 강 너머 멀~리 펼쳐진 풍경에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차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보고 자라온 바다와는 또 다른 냄새가 나던 강, 거대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고가도로, 빌딩들 사이에 넓게 펼쳐진 8차선 도로들... 연예인을 보는 것보다 더 신기했던 것 같네. 학교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나 서울 갔다 왔다!"며 자랑도 했다. 어릴 때 처음으로 본 서울은 그런 느낌이었다.



지방, 그것도 서울과 아-주 먼 지방에 살았던 나에게 서울은 '갈일'도 없고 '볼일'도 없고 '살일'은 더더욱 없는 그저 TV 속 도시, 꿈속의 도시, 내가 좋아하는 god가 사는 도시일 뿐이었고 오히려 실제 하는 도시처럼 느껴지는 곳은 비교적 가깝고 자주 갈 수 있었던 부산, 마산이었다. 한 번씩 크게 용돈을 타게 되면 "옷은 부산이지!", "파마는 부산이지!" 하며 친구들과 부푼 마음 안고 부산으로 달려가곤 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우리 동네는 나름 롯데리아도 있는(?) 번잡한 시내였기 때문에 이 '작은 도시'에 금방 익숙해졌고 이내 싫증이 났다. 대학 시절을 부산에서 보내면서 '도시에서 살고 싶다'라는 로망을 드디어 이룬 줄 알았지만 서면과 남포동에도 금방 질려버렸고. 졸업 후 취업을 목전에 두고 '서울이라는 곳에서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살면서 꿈꿔본 적도 없는 곳, 언젠간 살아보겠다! 하는 생각조차 없던 곳이면서도 막상 TV 속 그 세상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기도 했다. 유명한 어떤 것을 실제로 보는 건 나 같은 촌년에게 아주 특별한 일이다.

주절주절 써내려 놨듯이... 서울은 나에게 정말 까마득하고 낯설기만한 곳이었지만 벌써 여기에 산 지도 햇수로 9년이나 됐고 "목동이 어딘데? 남부터미널이랑 가깝나?"라는 친구의 질문에도 바로바로 대답할 정도로 서울 지리에 많이 익숙해졌다. '나도 이제 서울 사람 다 됐는갑다. 이힛' 하고 으쓱거리는 '가짜 서울사람'이랄까. 그러다 '진짜 서울사람' 김경수(남편)라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나의 대학생활, 친구들의 대학생활에서 "자취"는 자연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거제에 딱 하나 있는 대학교인 거제대에 간 친구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탈거제했으니 자취가 당연한 이치였는데... 남편의 친구들은 무슨 고등학교 다니듯이, 대학교를 집에서 다녔다고 한다. 그냥 집 근처라서 원서를 넣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서울에 살면 저렇기도 하구나...
그렇다. '진짜 서울사람'과 5년간 함께하며 떨었던 온갖 수다거리 중에서도, '어릴 때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의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롭던지. 정작 얘기하는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학교 끝나고 공개방송 방청에 갈 수 있다고? god를 학교 마치고 보러 갔단 말이가?"
"압구정이 용돈 받으면 놀러 가는 곳이라고?"
듣는 나만 놀라웠던 이야기들.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도, "소풍을 국회의사당으로 갔다고?!"라는 내 말에 얘기가 다른 곳으로 막 새기도 하고ㅎㅎ 평범했던 이제껏의 삶이 누군가에겐 놀라운 일이라는 사실에 남편도 신기해하곤 했다. 아니, 연예인들이 근처 중고등학교 출신이라니! 거제는 출신 유명인이 정말 손에 꼽는데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신보라, 스타일난다 모델.....)  중간고사가 끝나면 홍대나 압구정에 가다니... 기분 내서 머리하러 홍대에 가다니... 옷 사러 동대문에 가다니...
"우와... 서울 사는 중고등학생들 되게 좋겠다."
"자기네가 시험 끝나고 고현 미스터피자 간 거나 우리가 압구정 로데오 간 거나 다를 거 하나 없어. 우리한테도 그냥 평범했는데 뭐."
하긴, 이곳저곳 여행 다니면서도 항상 느꼈던 이치 아닌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그래도 로망 중에 로망이던 그 63빌딩은 서울에 살고 있는 지금도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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