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삶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삶

카카오톡을 지운 지도 벌써 2년. 카톡을 삭제하는 순간도 "3일 뒤면 다시 설치하겠지ㅋㅋ"라며 이미 예상되는 작심삼일을 비웃고 있었다. (약간의 금단현상 동반)

2010년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기로 결심한 건 카카오톡의 소문을 듣고서였다. '앱'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앱'이라는 것 하나만 다운 받으면 문자를 무제한으로 주고받을 수 있단다. ('문자 무제한'이란 문장도 이젠 새삼 낯설지만) 시간이 흐르며 스마트폰도 카카오톡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더 예뻐지고 더 편해졌다. 수시로 카톡을 열어서 새로 온 메시지는 없는지 알람을 꺼둔 단톡엔 놓친 메시지가 없는지 친구들의 프로필은 안녕한지... 아무 생각 없이 뒤적거리는 게 일상. 며칠에 한 번씩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 것도 나름의 퀘스트였다.


예민녀에게 있어 단톡방이란

그렇게 5년간 공기 마냥 당연하게 써온 카카오톡에게- 서서히(곧 강하게) 회의가 들게 된 이유는 아마도 '원치 않는 단톡'인 것으로 기억한다. 단톡에서 오가는 수많은 대화가 나에게 하는 말인지 허공에 하는 말인지... 일일이 답변을 해야 될지 이모티콘만 보내놔도 될지... 미묘하게 신경 쓰이는 단톡방만의 심리전(?)에 갑작스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과감하게 '나가기'를 누르면 그만이라지만 글쎄 그것도 쉽지만은 않던데. 제한 시간 없는 수다에 빠져 업무 일과의 반을 보낸 날도 '시간을 카카오톡에 빼앗겼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네이트온을 켜놓은 느낌이라며 사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스물아홉 즈음 사람 관계에서 밀려오는 피로감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쉴 새 없이 바빴던 적이 있다. 그때의 고민과도 아마 맞물렸을 것이다. 이런 것에 둔감한 줄 알았던 나는 알고 보니 공기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예민녀였던 것. (아마도 굉장히 네거티브한 시기였던 것 같다.)

 


 

"어머, 카톡을 왜 안 써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카톡의 프로필을 하나하나 구경하다 '이 사람은 이걸 왜 프로필에 걸어둔 거야'라며 속으로 뒷담화 중인 나를 발견했다. 아니, 혜주야. '안물안궁'이라고 외쳐 놓고 남들 프로필은 왜 구경하고 있는 건데. 그렇다. 내가 욕해야 할 대상은 자신의 계정을 자기 나름대로 표현한 그 사람이 아니라 틈만 나면 카카오톡을 펼쳐보고 있는 '나'였던 것이다.

잠깐 필요한 번호라 연락처에 저장을 해두면 카톡 새로운 친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부동산 사장님 계정, 택배 기사님의 계정, 보험사 아주머니의 계정... 심지어 썸남의 계정까지도 몇 년간 남아있는 모습에 또 한번 한숨이 나오기도. 속 시원한 '삭제'도 아니고 '숨김'!을 눌러야 하다니. 더군다나 내가 숨겨도 그들 목록에선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끔찍한(?) 사실도 불편했다.

카카오톡이 회의가 든 것 이상으로 '싫어진' 이유는 이렇게나 장황하다. "어머, 카톡을 왜 안 써요?" 하는 질문에 "불편해서요."라는 간단한 대답으로 끝내곤 하는데 '사실 이런 구구절절한 이유가 있었답니다' 하며 나를 변호하고 싶었나 보다.




진짜 카카오톡 없이도 괜찮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애매하게 느껴지는 단톡방은 과감하게 탈출(?)하기도 하고 연락하지 않는 지인은 다 숨김 처리도 해보며 몇 달을 넘게 지워와 말아의 사이를 반복했다. 단톡방의 시끌시끌함이 불편하지만 즐거울 때도 분명 있고 회사며 학교며 가족이며- 필요한 단톡방도 있는데...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 나만 도태되진 않을까? 하는 고민엔 생각보다 답이 빨리 나왔다. 오히려 도태되고 싶은 시기였으니 말이다. 친구와 연락은 어떻게 하지? 카톡이 없을 땐 연락도 못 하고 지냈던가. 연락할 방법은 생각보다 많았다.

카톡이 삶에서 없어지니 시간은 분명하게 늘었다. 여전히 입만 미니멀을 외치는 맥시멀한 삶이지만 복잡함은 한풀 꺾인 것 같았다. 온갖 단톡의 대화를 읽고 일일이 대답하던 시간, 프사를 고르던 시간, 남들 프사를 구경하던 시간, 별 의미 없는 수다를 떨던 시간이 줄었으니 말이다. 걱정한 것만큼 불편하지도 않았고 카톡 지우길 잘했다! 하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조직개편으로 새로운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팀원 연락처가 공유 됐고 자연스럽게 팀 단톡방도 생기게 됐다. 팀원끼리 꽤 친해졌을 무렵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업무톡, 공지톡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는데 (사실 팀 단톡방의 존재도 이때 처음 알았다.) "혜주씬 단톡방에 없어? 아, 카톡을 아예 안 써? 대박 나도 지울까 봐" 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애초부터 그 방에 묶여있지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이 정도로 무리에서 도태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이다.(?)

카톡 삭제는 '카톡을 쓰지 않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에서 벗어나고픈 마음, 스마트폰에 그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이어진 것일테니까. 물론 혼자 편하자고 카톡을 쓰지 않는 나 때문에 주변 사람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래 카카오톡 안 쓸 수도 있지'라며 나의 이런 생떼를 존중해주니 그저 고마운 마음. 그렇게 3일이면 다시 설치할 줄 알았던 카카오톡은 2년간 다시 설치할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설치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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